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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형석도
고유번호 1571
구분 활용데이터
카테고리 전통
분류 전통
저작자 관리자
해시태그 #생활소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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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저작권
가격 Free

·  제작자

​한국문화정보원  

 

​·  공급자

 

카톨릭관동대학교 박물관

 

​​·  유물설명

 

반달돌칼은 청동기시대에 곡식의 낟알을 거둬들이는데 쓰던 도구이다. 그 생김새가 대체로 한쪽이 곧고 다른 한쪽이 반달처럼 생겼다 해서 반달돌칼이라고 한다. 반달돌칼을 제작할 때는 납작한 편암이나 점판암계통의 돌을 사용해서 겉을 매끈하게 갈고 한쪽 날을 세웠다. 반달돌칼에는 한 두 개의 구멍이 뚫려있다. 이 구멍 사이에 끈을 꿰어 끈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어서 사용하였다.  

중국 반달돌칼은 대부분 등이 둥글고 날이 곧은 데 비해 우리 것은 등이 곧고 날이 둥근 것이 특색이다. 충청도, 전라도 해안지방에서는 지역적 형식으로 세모꼴 칼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 집자리 유적에서는 예외 없이 반달돌칼이 출토되었다. 반달돌칼의 출토가 많은 것은 당시 사람들의 생산 활동에서 농업의 비중이 컸다는 것을 알려준다.  

단, 수확의 도구이므로 재배와의 관계는 아직 불분명하다. 돌칼은 돌낫과 함께 청동기시대 후기까지 주요 수확구로서 계속 사용되었으나 초기철기시대에 이르러 철제로 대체되었다. 이 반달돌칼은 강원도 강릉에서 출토되었다. 전면을 고르게 갈고, 하단부는 한쪽면의 날을 비켜 세웠다. 몸체 중앙 상단에 지름 0.7㎝ 크기의 구멍 2개를 뚫었다. 우측 하단부의 날 일부가 결실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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