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인공지능은 요리를 프린트한다, 맛있게…
- 2017-01-04
- 오두환
[김성윤의 맛 세상] 인공지능은 요리를 프린트한다, 맛있게…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인공지능에 밀려날 직업 수두룩… 요리사도 안전하진 못해
인공지능 요리사 이미 요리 시작… 빅데이터 검색해 새 음식 개발, 음식 찍어내는 3D 프린터 시판중
새로운 맛의 세계로 인도할까
세계 최강 바둑 고수 이세돌이 인공지능 알파고에 완패한 사건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특히 어린 자식을 둔 부모들에게 인공지능이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알파고(高)가 대체 어디 있는 고등학교냐"며 엄마들이 수소문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 지금 초등학생인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쯤이면 현존하는 직업의 65%가 없어지고 변호사·의사·회계사도 인공지능에 밀려 사라진다니, 대체 우리 아이한테 뭘 가르쳐야 할지 걱정 또 걱정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정교한 감각과 손맛, 창의성을 요구하는 요리는 인간의 몫으로 온전히 남으리라 믿는 이가 많다. 하지만 요리사도 인공지능의 도전으로부터 안전한 직업은 아니다. 인공지능은 이미 요리를 시작했다. 인공지능 요리사의 이름은 '셰프 왓슨(Chef Watson)'. 왓슨은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수퍼컴퓨터다. 구글 알파고처럼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지녔다. 입력받은 수많은 데이터에서 공통점이나 규칙을 찾아내고 이를 스스로 분류해 학습하는 딥러닝(Deep-Learning)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기 한참 전인 2011년 미국 퀴즈쇼 제퍼디(Jeopardy)에서 인간 챔피언을 꺾고 우승했다.
셰프 왓슨은 수많은 레시피를 검색해 새로운 요리를 개발해낸다. 미국과 일본에는 셰프 왓슨이 만들어낸 레시피대로 조리한 음식을 내놓는 식당도 있다. IBM은 셰프 왓슨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애플리케이션(앱·ibmchefwatson.com)으로 내놨다. 셰프 왓슨이 어떻게 요리하나 궁금해 찾아들어가봤다. 주재료를 선택하면 빅데이터를 분석해 주재료에 최적화된, 그러니까 가장 어울리는 부재료와 양념 3가지를 찾아준다. 시험 삼아 소고기(beef)를 입력했더니 올리브, 땅콩, 서양 부추인 차이브(chive)가 어울린다고 추천했다. 부재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부재료 옆 X를 클릭하면 다른 식재료를 추천해준다.
화면 한가운데 있는 파란색 동그라미를 클릭하니 어떤 근거·논리로 이런 조합을 셰프 왓슨이 추천했는지 설명이 떴다. 셰프 왓슨은 어떤 음식과 식재료들이 서로 어울리는지 향(香)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인간이 인지하는 맛은 정확하게는 혀로 감지하는 맛(taste)과 코로 맡는 풍미(flavor)로 양분된다. 맛은 단맛·신맛·짠맛·쓴맛·우마미(감칠맛) 다섯 가지뿐이지만, 향은 수백수천 가지이다. 따라서 우리가 느끼는 맛은 대부분 향이며, 그렇기 때문에 서로 어울리는 향끼리 궁합을 맞춰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얼마 전 인터뷰했던 벨기에 과학자도 "맛의 80%는 실제로는 향"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셰프 왓슨이 제안하는 재료들을 조합해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데 참고할 수 있다. 직접 만들기 귀찮거나 그럴 능력이 안 되면 이 재료들을 활용해 만든 추천 요리가 주르륵 뜬다. 미국 음식 전문지 보나페티(Bon Appetit)가 셰프 왓슨에게 제공하는 방대한 레시피 컬렉션에서 뽑아내거나 약간 수정한 요리들이다. 소고기의 경우에는 소고기를 살짝 구워 올리브·땅콩·차이브를 넣은 샐러드 등 네댓 가지 추천 요리를 소개했다.
셰프 왓슨은 아직 로봇팔을 휘두르며 요리를 한다거나 하는 단계는 아니어서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직접 요리하는 날도 멀지 않았다. 음식과 과학기술이 결합한 '푸드테크'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3D 푸드 프린터에 셰프 왓슨을 연결하면 지금이라도 음식을 만들어낼 태세다. 3D 푸드 프린터는 글을 종이에 인쇄하듯 음식을 찍어내는 첨단 기기다. 미국 3D시스템스는 설탕을 매우 정교한 모양의 사탕으로 만들어내는 '셰프젯(Chefjet)'이란 프린터를 개발해 판매 중이다. 국내에는 로킷이란 기업이 출시한 '초코스케치'가 있다. 프린터와 함께 밀크·다크·화이트 세 가지 맛의 초콜릿 카트리지가 제공되는데, 카트리지 교체가 자유로워 여러 맛이 혼합된 초콜릿도 '출력'할 수 있다. 초콜릿을 오래 공부한 쇼콜라티에(초콜릿 전문가)가 아니어도 내가 원하는 맛과 형태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초콜릿을 만드는 게 가능해졌다.
새롭고 낯선 음식이나 기술에 대한 두려움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먼 옛날 돌멩이처럼 시꺼멓고 딱딱한 껍데기 안에 들어 있는 굴을 맛보는 데 도전한 조상이 없었다면, 그 황홀하게 상쾌하고 찝찔하고 달착지근한 굴 맛을 우리는 모르고 살았을지 모른다. 감자가 처음 소개됐을 때 유럽 사람들은 성경에 나오지 않은 음식이어서 두려워하며 먹으려 하지 않았다. 독일 프리드리히 왕이나 러시아 예카테리나 여제가 감자를 두려워하는 농민들에게 강제로 심게 했을 정도다. 하지만 감자 덕분에 수많은 사람이 기근을 견뎌내고 생존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도 이용하기에 따라 새로운 맛의 세계로 인류를 인도할 수 있지 않을까.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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