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민주화인가, 노동 파괴인가…3D프린터의 두 얼굴
오원석
처음에는 사람이 손으로 옷을 만들었다. 바늘과 실은 사람의 손 위에서 춤을 췄다. 세월이 흐르고 기술이 발전했다. 바늘과 실은 기계 손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옷 공장에서는 예전처럼 많은 인력을 쓸 필요가 없어졌고, 대신 기계를 구입해 옷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기계의 도움으로 더 많은 옷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상투적이지만, 노동절약적 기술진보의 손쉬운 사례다. 말 그대로 기존의 방법과 비교해 노동을 적게 사용하면서도 종전과 같거나 더 많은 생산량을 기대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을 말한다.
3D프린팅 기술을 생각해보자. 3D프린팅 기술은 3D 모델 데이터를 바탕으로 물건을 인쇄하는 기술이다. 1980년대 처음으로 고안돼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자동차 등 일부 제조업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2010년 이후 이른바 ‘메이커 운동’을 타고 확산했고, 지금은 항공기∙선박 제조부터 의료분야에 이르기까지 점차 접점을 넓히는 추세다. ‘생산혁명’, ‘제조혁신’ 따위의 수식이 붙는 3D프린팅 기술의 이면에는 노동시장의 인력 구조를 뒤흔들 것이라는 기대와 우려가 뒤섞여 있다.
3D프린팅 기술에 생산 노동자 무너진다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하면, 마치 기존 프린터가 종이에 글자를 인쇄하듯 입체 물체를 뽑아낼 수 있다. 항공기 기술 전문업체 보잉은 지난 2012년 2만개 이상의 비행기 부품을 3D프린터로 제작했다.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도 지난 2014년 3D프린팅 기술 분야에 5천만달러 이상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맞춤제작이 필수였던 탓에 숙련된 기술 인력을 요구하는 치과의 치료용 보철 제작에도 3D프린팅 기술이 침투 중이다. 헬스케어 전문업체 얼라인 테크놀로지가 지난 2012년 3D프린팅 기술의 도움을 받아 생산한 치과용 보철 개수는 1700만개에 이를 정도다. 금형이나 사출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방식의 대량생산 개념이 3D프린팅 기술의 도전에 직면한 셈이다.
맥킨지가 발간한 보고서를 보자. 맥킨지가 지난 2013년 5월 발간한 ‘파괴적 기술: 삶과 비즈니스, 글로벌 경제를 발전시키는 변화’ 보고서는 일부 직업을 사라지게 할 ‘파괴적인 기술’ 중 하나로 3D프린터를 꼽았다. 주로 제조업과 관련이 깊은 일자리다. 로봇이나 3D프린터의 도입이 제조업에 종사하는 인력뿐만 아니라 의료 분야 전문직종도 가져가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같은 변화는 분배의 불평등을 가속화 한다. 첨단 기술의 도입으로 자본과 노동자 사이의 분배구조가 불평등하게 변화한 것처럼, 3D프린팅 기술도 이를 심화할 첨단 기술로 인식하는 견해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는 2013년 6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새로운 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적절한 투자일 뿐 노동력이 아니다”라며 “노동을 제공하는 측이 훨씬 작은 부분을 가져가는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이 칼럼에서 3D프린팅 기술에 관한 맥킨지 보고서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 과정에서 일자리의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중국을 비롯해 제조를 주요 경제 동력으로 삼는 동남아시아의 저개발국가가 무대다. 자본은 앞으로 지속적인 비용이 투입되는 기존 생산인력 대신 3D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비용 절감을 꾀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2013년부터 3D프린터 기술을 ‘국가 하이테크기술 연구발전 계획’에 넣었다. 전문 연구센터도 건설해 오는 2016년 3D프린팅 기술 시장 규모를 100억위안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우리돈으로 1조7천억원 규모다. 공장 노동자를 3D프린터로 대체해 노동자에 돌아가는 비용을 줄여 중국을 탈출하려는 글로벌 기업의 공장을 붙들겠다는 것이다.
신관호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대담집 ‘왜 자본은 일하는 자보다 더 많이 버는가’에서 “3D프린터는 노동의 역할을 크게 줄여준다”라며 “소수의 3D프린터를 설계하는 사람 이외에 비숙련 노동자의 필요성이 줄어 기술발전이 소득을 줄이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아닌가 한다”라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출처] 블로터앤미디어
저작권자 ⓒ 패션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