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3d 프린터 테마주
[주영성 안국 수치과 원장]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어느 날, 아버지께서 푸르스름한 바탕에 파란 선으로 그려진 그림을 들고 오셨다. 여러 장의 종이뭉치에는 집 모양이 다각도로 그려져 있었다. 청사진으로 된 집의 도면이었다. 그 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그 도면을 바탕으로 집을 짓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런 도면을 다시 접하게 된 것은 중학교 기술 시간이었다. 청사진은 아니었지만 하얀 도면에 제도기와 샤프를 들고 물체의 도면을 그리는 실습을 했다.
종이에 도면을 그리는 일은 상당한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각도기를 이용해 선의 각도를 정확히 맞춰야 했으며 삐져나온 선은 일일이 지우개로 지워야 했다. 용도에 따라 선의 굵기를 다르게 해야 했으며, 단순한 일자선이 아닌 파선과 1점 쇄선, 2점 쇄선을 일일이 그려야 했다. 필자는 당시 컴퓨터를 상당히 좋아했고,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곤 했었기에 이런 작업들을 컴퓨터로 하면 상당히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실제로 이런 작업에 컴퓨터를 활용하는 방법은 이미 개발돼 있으며, 산업현장에서 꾸준히 활용되고 있다. 단순평면 도면에서 시작해 3D(3차원) 그래픽이 익숙하지 않던 시절에 이미 3D 도면을 그릴 수 있는 수준까지 개발된 것이다.
컴퓨터로 도면을 3D로 그릴 수 있는 수준까지 왔지만 프린터는 그렇지 않았다. 아직도 2차원 평면 세상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도면을 바탕으로 컴퓨터로 물건을 절삭하는 CNC(컴퓨터 수치제어)가공 기계들이 있었지만 단순한 형태의 가공밖에 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3D로 복잡한 디자인을 하고, 이를 3차원 형태로 만드는 수준까지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에 치과 분야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치과의 특성상 3차원의 정밀하고 복잡한 형태의 금속성 물체를 만드는 일이 많은데, 이 과정을 컴퓨터를 이용해 기계화하고자 하는 욕구가 꾸준히 있어 왔던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덜 발달되어 치과에서 요구하는 정밀성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치과가 의과와 달리 갖는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수복을 통한 기능의 회복이다. 즉, 경(硬)조직인 치아의 형태를 복원하여 치아 본연의 기능인 저작능력을 회복시켜주는 것이다. 이것에 특화된 분야가 보철과이며,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앞선 칼럼에서 언급한 크라운 치료이다.
크라운 치료는 치아 깎기에서 시작한다. 이를 씌울 수 있게 치아를 잘 깎는다. 그리고 본을 뜬다. 본을 뜬 인상체에 석고를 부어 깎은 치아의 석고 복제모델을 만든다. 이를 기반으로 기공사가 기공용 왁스를 일일이 쌓아 올린 후 조각해 크라운의 형태를 만든다. 이어 전형적인 금속주조 방법을 이용해 크라운을 만든다.
복잡하고 정밀한 일련의 과정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그만큼 공정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러한 과정을 컴퓨터를 이용해 기계화하는 일이 근래에 결실을 이뤘다. 아직 모든 과정이 디지털화, 기계화되지는 않았지만 상당 부분 진행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지르코니아 크라운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의 방법으로는 사용할 수 없었던 지르코니아라는 재료를 치과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르코니아 크라운은 기존 방식의 크라운 제작방식과 전혀 다르다. 기존 크라운은 왁스를 쌓아 올린 뒤 조각하여 형태를 만들었다면, 지르코니아 크라운은 컴퓨터를 이용해 형태를 디자인 한다. 인상체를 이용해 만든 깎인 치아복제 석고 모델을 3차원 스캐닝 작업을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3차원 가상 형태의 크라운을 만든다. 그리고 그 디자인을 기반으로 다축(多軸) 밀링머신이 지르코니아 블럭을 깎는다. 그렇게 나온 크라운 형태를 고온에서 구워 최종 결과물을 만든다.
지르코니아 말고도 다른 종류의 크라운에서도 이 기술이 활용된다. 골드 크라운을 이러한 방식으로 제조하는데 이는 다축 밀링머신으로 바로 깎을 경우에 재료의 낭비가 심해 귀금속을 다루기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 설명한 것은 크라운을 만드는 일부의 과정을 컴퓨터를 동원해 기계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구강 내에서 깎은 치아를 디지털 스캔 과정을 거처 본뜨는 과정부터 최종 지르코니아 크라운까지 컴퓨터를 이용한 크라운 제작이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 구강 내 스캔의 사용법이 까다롭고 정밀성이 떨어지는 데다가 고가여서 기존의 본뜨는 법을 대체하지는 못하고 있다.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되고 대중화된다면, 복잡한 과정을 거쳐 본을 뜨는 대신 사진을 찍듯 간편하게 디지털 스캔을 하게 될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를 필두로 3D가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3D 프린터가 급속히 대중화돼 컴퓨터로 디자인한 형태를 3D 프린터로 실체화하는 것이 낯설지 않게 됐다. 학생 때는 생각도 못했던 컴퓨터를 이용한 3D 작업이 어느덧 치과에도 깊숙이 들어왔다. 여전히 진화하고 있는 3D 기술에 힘입어 앞으로도 변화될 치과계의 모습이 기대된다.
[출처] zrapid
저작권자 ⓒ zrapid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